
구스 반 산트의 <Last days>가 상영되었던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잡지와 신문의 이 곳 저 곳에서 커트 코베인의 흔적들을 만날 수 있었다. 그것은 영원히 잊지 않겠다는 일종의 다짐처럼 느껴지기도 했었다. 그러나 2008년 오늘엔 그런 모습들이 별로 눈에 띄지 않는다. 팍팍한 일상을 살아가는 왕년의 청춘들이 이제 그를 잊어가는 것은 아닐까? 마치 어릴적 친구들과 몇 년 씩 전화 한 통, 술 한 잔 기울일 시간 갖지 못한 채, 그렇게 나이 들어가는 것처럼. 그러다 아주 오랜만에 우연히 만난 어느 날, 서로의 볼에 깊게 패인 주름자국을 쳐다보며 삶의 덧없음을 경험해야 하는 것처럼 말이다.
형식적인 조문 하나 없이 조용히 너무도 조용히 흘러가는 4월의 초입에 너바나의 [Nevermind] 앨범을 찾아 자동차의 CD 플래이어에 걸어놓았다. 팝 칼럼니스트만의 분양소를 마련한 셈이다. 원시적 에너지를 느끼게 하는 기타 인트로와 함께 절망에 찬 커트 코베인의 음성이 쏟아져 나온다. <Smells like teen spirit>을 지나 <Come as you are>를 거쳐 <Polly>에 이르자 ‘91년 군에서 첫 휴가를 나왔던 그 때로 되돌아갔다. 떠난 여자 친구가 선물했던 커플링을 소주잔에 던져 놓은 채 거리로 나섰던 기억. 부산의 광안리까지 한 번도 쉬지 않은 채 차를 달리던 기억. 싸늘한 가을바람을 맞으며 해돋이를 배경 삼아 김민기의 <친구>를 흥얼거리던 기억. 커트 코베인의 목소리는 알라딘의 램프처럼 잃어버렸다고 여겼던 기억들을 자유자재로 불러내고 있었다.
카뮈는 이렇게 말했었다. ‘스스로 생을 마감한다는 것은 쉽게 지지 않겠다는 의지다.’ 그의 말대로라면 사라진 커트 코베인은 아직도 모순으로 가득찬 삶과 투쟁중인 것이며 남겨진 우린 비굴한 투항을 한 사람들인지도 모른다. ‘죽음이 없었다면 인간은 누구도 철학을 하려고 하지 않았을 것이다.’라는 쇼펜하우어의 일갈을 빌리면 우린 커트 코베인의 죽음을 통해 14년이나 지난 지금까지도 개똥철학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일관성 없는 상념들이 한동안 머릿속을 돌아다녔다.
생각해보면, 사라진 것은 커트 코베인만이 아닌 것 같다. 그 때, 그의 음악을 같이 듣고 헤드뱅잉을 감행하던 그 많은 청춘들은 다 어디로 가버린 걸까? 모처럼 맘먹고 홍대의 클럽에 들어가도 동년배의 누군가를 만나기 불가능해진 지금 <Smells like teen spirit>에 아드레날린 쏟구치던 그 인간들은 다 어디에 숨어버린 걸까?
맥주 몇 캔에 취기가 돌기 시작하던 4월 8일의 저녁, 핸드폰에 저장되어 있던, 그러나 꽤 오래 전화 한 번 하지 않았던 옛 지우들에게 단체 문자를 보냈다. ‘4월 8일 커트 코베인의 열 네 번 째 기일...’ 술기운에 타협하고 잠에 빠져들 때까지 몇 시간이 흘러갔다. 그러나 아무런 답 문자도 받을 수 없었다. 안녕 커트... 안녕 청춘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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