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해에 열리는 영화제만 해도 이제는 셀 수 없을 지경이다. 그 중 단연 씨네필이라면 놓치지 않는 영화제가 바로 부산국제영화제일 것이다. 나 또한 집이 부산인 지라, 지역적으로도 그리 멀게 느껴지지 않고 내 집 가는 듯 편안한 마음으로 10월이 되면 자연스레 부산으로 향한다.
영화제에 가기 위해 가장 먼저, 빨리 준비해야 하는 것은 영화제에 상영될 영화를 살펴보는 일이다. 영화잡지를 사면 쉽게 카탈로그를 구할 수 있고, 홈페이지에도 업데이트 된다. 상영시간표대로, 또는 선호하는 상영관에서, 선호하는 지역에서 영화를 차례차례 확인한다. 코드 넘버 뒤로 보이는 페이지를 찾아가며 제목에서 예상되는 분위기와 전혀 다른 영화도 발견할 수 있고, 내가 좋아하는 감독, 배우들의 필모그래피도 확인할 수 있다.
이번 14회 부산국제영화제에 기자로 가게 되면서 나름 무거운 마음이 있었다. 그건 바로 예매전쟁이다. 웬만큼 인기 있는 영화제에서 표구하기란 정말 하늘의 별 따기의 차원을 넘어 하늘에 별 그리기 수준이다. 베니스나 베를린 칸 영화제의 수작들을 만나볼 기회는 물론이고 평소 기다렸던 감독의 신작도 감상할 수 있다. 또 GV는 어떻고. 감독과 배우들과 함께 본 영화를 얘기하는 시간은 언제나 소중하기만 하다.
일찌감치 예매전쟁을 피하고 싶었던 나는, 사람들이 잘 모를 것 같은, 사람들이 그렇게 몰리지 않을 것 같은 영화를 선별했다. (물론 내 기준이므로 영화의 완성도에는 전혀 관련이 없다.) 또 곧 개봉을 할 것 같은 영화도 피했다. 관객들이 많이 찾는 작품들은 인기작들이기 때문에 올해 안에, 또는 내년 초까지 개봉할 확률이 높다.
나의 이런 잔머리 아닌 잔머리는 파국을 맞이하고 말았다. 물론 크게 기대에 떨어지는 작품은 없었지만 그렇다고 '아 이 영화제에서 이런 잊지 못할 작품을 만났구나!' 하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예매 시작하는 그날. 아침부터 일찍 일어나 광랜의 PC 방을 찾아 '광클'하지 않음을 뼈저리게 반성하게 될 뿐이다. 너무 찾아본 정보가 형편없었구나, 하는 생각도 들고 꼼꼼하지 못했음은 후회해도 소용이 없다. 그래서 너무나도 보고 싶은! 게다가 개봉도 안 할지도 모르는 작품들을 눈물 나는 마음으로 정리해보려 한다. 제발 이 기사작성 시간이 나에게 간헐적인 위로라도 좋으니 위로가 되었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하다.
(1) 메리와 맥스/ 2009 선댄스영화제 개막작
나는 선댄스영화제 상영작들을 매우- 좋아한다. <미스 리틀 선 샤인>도 그렇고 '조셉 고든 래빗'에 무한애정을 품게 해준 <브릭>도 그렇고. 또 작년에는 <워낭소리>가 경쟁부분에 오르기도 했다. (나 같은 경우는 백만 돌파가 아니라 선댄스 출품작이 되었다는 소식이 <워낭소리>를 더 각인시켜주기도 했다) 작년 부산국제영화제에서 <프로즌 리버>도 상영되었지만 안타깝게 보지 못했다. 그런데 이번엔 워너비 선댄스의 개막작이라니! 게다가 애니메이션이라니! 게다가 실화라니! 나는 정말 땅을 치고 후회하고 말았다. 그것도 영화 상영시간 2시간 전에 안 것이다. 하루 전 꼭두새벽부터 나와 예매를 해도 힘들 판에 2시간 전에 안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마지막 남은 희망으로 예매처에 호소해봤지만 소용없었다. <메리와 맥스>안녕. 제발 우리 또 보자!
(2) 딥 레드/ 다리오 아르젠토
씨네21에서 나온 피프 데일리 4호에 보면 11페이지에 김도훈 기자님이 다리오 아르젠토의 영화 <딥레드>에 관한 글을 쓰셨다. 나는 2년 동안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서 오피니언을 했다. 그만큼 하드코어 한 영화에 자신이 있고 애정을 담고 있다.
'아르젠토의 영화에서 중요한 건 정신 나간 색채와 미장센, 섹슈얼한 죄의식으로 점철된 살인 미학이다.' 이 한 문장에 내가 얼마나 끌릴지 짐작이 가실 것이다. 그리고 덧붙이는 말씀 '다리오 아르젠토의 팬이라면 영화제 기간 중 부산에 오지 않는 걸 일생일대의 실수로 여겨야 할지도 모른다. 그는 다시 오지 않을 테니까.'
정말……. 다시 안 오시나요? ㄷㄷㄷㄷ 이렇게 난 일생일대의 실수가 생기고 말았다.
(3) 레바논/ 베니스영화제 황금사자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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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니스영화제에 노미네이트 된 것만 해도 화제작이 될 법인데, 황금사자상이라면 많은 사람이 인정할만한 영화라는 것이다. <레바논>이 상영된다는 것은 일찌감치 알고 있었다. 근데 나는 '뭐……. 개봉하겠지'라는 생각으로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 (사실 어제 피프 빌리지 에서 표가 남았느냐고 물어보긴 했다. 결과는 당연히- 나는 루저...) 영화제에서 만난 오빠는 레바논이 정말 최고였다고 했다. 그 최고의 시간 속에 내가 없었다는 게 안타깝고 슬프다. 근데 이거 제발 개봉…….하겠죠?
(4) 채식주의자 /한강의 단편 <몽고반점> 영화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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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 전이었나, 이상 문학 작품 중 대상을 차지한 한강의 '몽고반점'을 읽었다. 나는 순식간에 한강의 글에 매료되고 말았다. 그 이후로 아직 너무나도 선명하게 그 책을 읽은 장소와 공기 그리고 바람의 방향까지 기억하고 있다. 물론 책의 내용은 내 머릿속에 부유하고 있다 아직 여전히 (그리고 언제나). 그 후로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이 단편이 영화화되면 그건 밑져야 본전이 아니라 최고가 될 거라고 장담했다. (이 단편을 영화화로 시도할 생각이 있는 정도면 뭔가 이미 통했다고 생각했다) 물론 이런 찬사만 하고 다녔을 뿐 어떠한 정보도 얻거나 찾으려 하지 않았다. 그게 문제였을까. 나는 투썸플레이스에서 여유만만 딸기 프레페를 쪽쪽 빨고 있다가 어제 12시 (10일 토요일) <채식주의자>라는 제목으로 한강의 '몽고반점'이 영화화된 것을 확인하고 말았다. 나를 갈아서 프레페로 만들고 싶다.
(5) 카페 느와르 /정성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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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는 웬만하면 다 알 것이다. 영화는 괴테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취하면서 롤랑바르트의 '사랑의 단상'을 깔아놓고 있다고 했다. 솔직히 이 한 문장만 있어도 영화를 볼 것 같은데 영화비평가 정성일님의 첫 영화라니! 개봉할 것 같았다 솔직히. 근데 부산 와서 들은 바로는 어쩌면 일반개봉은 안 할지도 모르겠다고 한다. 오 마이 갓. 시련이 계속되고 있다. 액땜이라 생각하기엔 내 미래까지 불투명해 보인다. 아놔........
역시나. 예상했던 것처럼 이 포스 팅은 내게 큰 위로는 주지 못했다. 그러나 버트 하지만! 다음 영화제부터는 정말 007보다 치밀한 작전으로 보고 싶은, 볼만한 영화를 놓치지 않으리라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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