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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 '라울'은 피노체트 독재 정권 치하에서 작은 동네 레스토랑 댄서로 살아간다. 틈만나면 동네 극장에서 영화 '토요일 밤의 열기'를 관람하고, '토니 마네로'의 대사와 춤을 재연하는 게 직업이자 취미인 인물이다. 그의 꿈은 유명인 닮은 꼴을 뽑는 '페스티벌'이라는 TV프로그램에서 우승하는 것.
 
여기까지 들으면, 대충 연상되는 그림이 있다. 우리가 흔히 봐온 재기발랄한 코미디 영화를 떠올리기 쉽상이다. 실제로, 이번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시놉시스만으로 이 영화를 고른 관객중 일부는 코미디를 기대했다가 난데없이 튀어 나오는 피비린내 진동하는 폭력에 식겁했을 게다. 영화가 끝난 후 별점 평가에서 달랑 별점 1개에 투표한 이들중 상당수가 바로 이런 분들 아닐까?

누군가의 폭행으로 쓰러진 할머니. 친절한 '라울'은 몸이 성치 않은 그녀를 집까지 '모셔다' 준다. 할머니는 고마운 마음에 통조림을 선물하지만, '라울'은 그 통조림으로 할머니의 뒷통수를 날려 버린다. 숨이 멎어가는 할머니곁에서, '라울'은 통조림 속 고기를 잘근 잘근 씹어 먹고, 태연자약한 얼굴로 할머니가 아끼던 컬러TV를 들고 나온다.

'라울'에게 폭력은 일상이다. 무엇이든 갖고 싶은 게 생기면 그는 주저없이 폭력을 휘두른다. 언제, 어디서건 사람 목숨 하나쯤 없애는 건 일도 아니다. 기분 내키는 대로 주저없이 온갖 잡동사니로 사람의 머리를 짓이겨 놓는다. 원하는 걸 얻는데, 이만한 방법도 없다. 그냥, 손에 잡히는 무언가로 숨이 멎을 때까지 내리치면 만사 오케이.

'라울'이 흩뿌리는 핏물이 스크린을 물들이는 동안, 가끔씩 피노체트 정권의 비밀경찰이 등장한다. 좀 수상해 보인다는 이유로 폭력을 일삼고, 수상한 정치범 하나쯤은 그냥 죽여도 무탈인 그들. 무소불위의 권력이 무엇인지 몸소 보여주시는 그들의 행동은 '라울'의 그것과 흡사하다. 기분 내키는 대로, 원하는 걸 얻기 위해 극단의 폭력을 최상의 도구로 사용한다. 그런데, 감독은 국가의 이름으로 행해지는 비밀 경찰의 폭력은 슬쩍 비추고, 개인인 '라울'의 폭력은 최대한 자세히 묘사한다. 덕분에, 관객은 비밀 경찰의 폭력 보다 '라울'의 폭력에 더욱 민감하게 반응한다.

영화 '토니 마네로'의 묘미는 바로 이 지점이다. 우리는 흔히 훨씬 잔혹하고 무서운 국가의 폭력에는 무덤덤하게 반응하면서도, 국가의 그것에 비하면 '조족지혈'이라 할 만한 개인의 폭력에는 극단적 분노와 저주를 퍼붓곤 한다. 한국 현대사에서 자신들의 잇속을 채우기 위해 수십, 수백명의 목숨을 앗아간 독재자가 어디 한 둘인가? 피노체트가 울고 갈 독재자는 한국에도 차고 넘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중은 '유영철'과 '강호순'을 더 증오하고 저주한다. 몇 명을 죽이면 살인범이 되지만, 수백, 아니 수만명을 죽이면 영웅이 되다고 했던가?  아직도 우리 사회에는 독재자를 영웅이라 부르는 이들이 너무도 많다.

영화 '토니 마네로'의 감독 '파블로 래레인'은 피노체트 정권의 폭력을 한 남자의 우화로 변주해 관객의 뒷통수를 사정없이 내리친다.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좌파 정권을 무너뜨리고 독재자 피노체트를 내세운 미국, 권력 유지를 위해 수천명의 목숨을 앗아간 피노체트. 그들 모두가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잔혹한 폭력을 아무렇게나 휘두르는 '라울'이다. 하지만, 영화 속 등장인물, 심지어 관객까지도 미국이나, 피노체트 정권의 폭력에는 무신경하다. 오직 '라울'의 가부장적 권력과 폭력에만 집중할 뿐이다. 그렇게 감독 '파블로 래레인'은 독재 사회의 내면과 대중의 속내를 날카로운 비수로 저며낸다. 지금껏 본적 없는 탁월한 통찰력으로...


* 사족 :  감독 '파블로 래레인'은 76년생. 도대체 뭘 먹고 자라면 저 나이에, 저런 경지에 이를 수 있는지 몹시도 궁금하다. 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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