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감독 박찬욱과 봉준호는 언제나 '비교의 제단' 위에 올려진다. 언론은 물론이고, 대중들 역시 그 둘의 영화적 행보를 놓고 비교 우위를 따지는 경우가 많다. 특히나, 올해는 비슷한 시기에 논쟁적 작품을 선보였고, 나란히 칸 영화제를 다녀왔으니, 단순하게는 수상여부와 흥행추이부터 평단 및 관객의 반응, 연출 패턴까지 저울에 올려진다. 동시대에서 한국을 대표하는 영화감독이 '되어 버린 자'의 숙명이다. 그렇다면, 그 둘의 영화는 어떻게 다를까?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자면, 박찬욱의 영화는 '가진 자'와 '못 가진 자'의 대립과 충돌로 발생하는 파열 에너지를 동력으로 영화를 끌고 나가는 반면, 봉준호는 '못 가진 자' 사이의 이전투구에 집중한다. '올드보이'로 대표되는 박찬욱 감독의 '복수 3부작'를 돌아보자. '복수는 나의 것'은 청각 장애인 노동자 '류'가 전기업체 사장인 '동진'으로부터 '착한 유괴'로 돈을 받아내려는 이야기가 중심 플롯이다. '올드보이'는 대단히 많이 '가진 자'인 '이우진'이 돈의 힘으로 '오대수'를 갖고 노는 이야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친절한 금자씨'는 또 어떤가. '복수는 나의 것'처럼 돈을 목적으로 한 '나쁜 유괴'가 핵심이다.
봉준호의 영화는 어떤가? 그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는 '살인의 추억'과 '괴물'에 '가진 자'와 '못 가진 자'의 대립구도가 존재했던가? 심지어, 데뷔작 '플란다스의 개' 조차 '못가진 자'들의 좌충우돌만이 존재한다. 봉준호 영화에 등장하는 주요 인물들은 '못가진 자'들이며, 그들은 서로를 물고 뜯으며 싸운다. '가진 자'의 것을 훔치거나, 빼앗으려 하지 않는다. 때문에, 갈등도 없다. 그러면, 누군가는 최근작 '마더'의 골프장씬은 뭐냐고 물을지 모른다. 그 씬은 주인공 '도준'과 '진태'의 캐릭터와 관계를 소개하는 씬일 뿐, 이른바 '계급 투쟁'과는 한참 거리가 멀다.
대신, 하층민의 삶을 살아가는 봉준호의 주인공들은 국가 권력과 자주 대립구도를 형성한다. '괴물'이 그랬고, '마더' 역시 그랬다. 심지어, 주인공 자신들이 국가 권력안에 포함된 경찰이었던 '살인의 추억' 마저, 살인범 추적 대신 데모 진압을 강요하는 더 큰 권력과 대립한다. 그렇다면, 박찬욱의 영화는? 자본가는 존재하나 국가 권력은 존재하지 않는다. 봉준호의 주인공들 처럼, 국가 권력에 의해 뭔가를 강요당하거나, 핍박 받지 않는다. 단 하나의 예외는 '공동경비구역 JSA'의 여주인공 '소피'가, 정치적 이해 득실을 따지는 국가 권력들(!)에 의해 압박 당하는 설정 정도. 그러나, '공동경비구역 JSA'는 기획영화의 범주에 들어가는 작품인 바, 온전히 박찬욱의 영화라 할 수 없으니, 그 부분은 무시해도 무방하다.
그러니, 봉준호의 영화가 훨씬 현실적이며, 한국 사회의 구조적 폭력성와 부조리를 잘 드러낸다는 평가가 정당해 보인다. 반면에, 박찬욱의 영화는 대단히 개인적이며 관념적이다. 전작인 '싸이보그지만 괜찮아'와 최근작 '박쥐'의 등장은 앞으로 그가 더욱 개인의 사유와 관념에 집착할 가능성이 높음을 보여주는 증거들이다. 그렇다면, 이 대목에서 떠오르는 질문은 두가지.
먼저, 어느 쪽이 더 낫냐고? 영화를 놓고, 옳고 그름을 따지는 것 만큼 멍청한 짓도 없다. 같은 영화를 놓고도 사회적 관점이냐, 미학적 관점이냐에 따라 평가가 달라지니 말이다. 다만, '마더'와 '박쥐'를 기점으로 봉준호는 대중적 지지, 박찬욱은 평단(특히 유럽 평단)의 지지에 무게중심이 쏠리는 양상이다. 매일 저녁 9시, 사회의 부조리와 국가 권력의 몰인정을 지켜봐온 관객들은 박찬욱 대신, 봉준호의 영화에 열광할 확률이 높다. 대신, 박찬욱은 미학과 관념의 상찬을 마음껏 펼칠 수 있는 특권을 획득했으니, 둘 다 한국 영화사에 중요한 족적을 남길 게 분명해 보인다.
남은 질문은 하나. 둘은 왜 그렇게 다를까? 하늘 아래 똑같은 사람이 없으니, 영화 역시 다를 수밖에. 하지만, 굳이 이유를 찾자면, 두 감독의 출신과 성장배경의 차이를 거론할 수 있다. 대부분의 감독들은 자기가 보고, 듣고, 경험하고, 사유한 것들을 고스란히 스크린 위에 투사하기 때문이다. 드물게, 영국의 '켄 로치'처럼, 귀족 출신이면서도 노동자 계급의 삶을 누구 보다 정밀하게 묘사하는 감독도 있지만, 대게는 자신이 발을 딛고 섰던 계급의 얘기를 더 잘할 수 있는 것 아닌가? 2009년 한국은 중세 보다 더 세분화된 계급사회이니 말이다.
posted by PD the ripp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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