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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에서 음식 프로그램은 스테디 셀러다. 시청률 대박은 드물지라도, 고만 고만한 프로그램들 사이에서 꾸준한 시청률을 보장받을 수 있는 아이템이기 때문이다. 특히, 오후 5시에서 저녁 7시 사이(저녁식사 직전)에 편성하거나, 주말 오전 11시에서 12시 사이(점심 식사 직전)에 편성하면, 시청자들의 시장끼 덕분에, 꽤 짭짤한 시청률을 보장받는다. 물론, 야식 타임인 밤 10시에서 11시 사이 역시 나쁘지 않은 결과를 얻는다.

제작자 입장에서 보면, 음식 프로그램은 만들기 쉬운 아이템에 속한다. 리액션 좋은 리포터를 데리고 나가 재료를 구하고, 화면빨 좋은 식당 한군데를 섭외해서 먹음직스럽게 화면을 구성하면 끝. 복잡한 구성도, 까다로운 촬영 조건도 없는 평이한 아이템이다. 게다가 기본 시청률을 보장 받으니, 이 얼마나 좋은 아이템인가? 그런데, 그렇게 만들기 쉽다는 음식 프로그램 제작 현장에서, 한국 방송계의 구조적 모순과 빈약한 윤리 의식으로 인해, 눈에 보이지 않는 문제가 끊임없이 발생한다는 점이다.      

만약, '낙지'를 소재로 한 음식 프로그램을 제작한다고 치자. 대부분의 음식 프로그램은 산지에 가서, '낙지'를 잡는 것부터 시작한다. 그런데, 낙지를 잡는 방법은 한가지가 아니다. 썰물 때는 삽으로 갯벌을 파내는 방법으로 낙지를 잡고, 밀물 때는 작은 배를 타고 나가 주낙(낚시 바늘의 일종)을 이용해 잡는다. 지역에 따라, '횃불 낙지'라고 해서, 야간에 물이 찰랑거리는 갯벌에서 횃불(요즘에는 랜턴)을 이용해 낙지를 주워담는(!) 방법도 있다. 노련한 제작진은 계절이나 날씨, 장소와 제작기간에 따라 적절한 위치를 정하고 섭외에 들어간다.

섭외 대상은 낙지 잡이로 유명한 마을 이장. 제작진은 낙지 잡는 모습을 가장 잘 잡을 수 있는 때를 묻지만, 거의 대부분의 이장들은 애매모호한 답변을 내놓는다. 밀물과 썰물 시간이야 정확하지만, 시시각각 변하는게 바다 날씨고, 날씨가 좋다고 해도 어획량을 장담할 수 없으니, 자신있는 답변이 불가능한게 당연지사. 결국, 촬영이 급한 제작진은 마을 이장과의 상의 끝에, 제작일정에 맞춰 적당한 때와 장소를 선택한다.

정해진 시간에 현장에 도착한 제작진, 십중팔구는 난감한 상황에 봉착한다. 가장 흔한 경우는 날씨가 변덕을 부리는 경우인데, '하루 벌어 하루 먹는다'는 표현이 정확한 한국 방송계의 제작 시스템상, 날씨 문제로 현장에서 촬영을 접고, 다른 날을 잡아 재촬영에 나서는 건 드문 일이다. 담당PD가 계약직이거나, 제작 주체가 외주 제작사라면, 생명의 위협을 감수하고서라도 예정된 촬영을 진행시켜야 하는 게 숙명이니, 무리한 촬영이 진행될 수 밖에 없다.

묘하게도 날씨가 좋으면 낙지들이 협조를 안해준다. 촬영 전날, 수백마리를 잡았다는 마을 주민을 따라 나섰건만, 카메라만 들이대면 낙지가 사라지니, 환장할 노릇이다. 기껏해야  반나절, 길어봐야 하루안에 낙지 잡기를 끝내야 식당에서 요리며 시식을 촬영할 텐데, 하루 종일 몇마리밖에 못잡으면 방송에 쓸 그림이 부족하다. '초'가 아니라 '프레임' 단위로 컷이 나눠지는 방송환경에서, 못해도 수십마리쯤은 잡아줘야 그림이 된다. 잡힐 때까지 촬영하면 되지 않느냐고? 얘기했잖나? 하루 벌어 하루 먹는 처지라고.

이런 상황이 오면, 대게는 그림을 '연출'할 수 밖에 없다. 먼저, 멀쩡한 갯벌을 파내는 모습을 촬영한다. 그리고, 이미 잡은 낙지를 구멍에 넣은 후, 마치 새로 잡은 것 처럼 다시 꺼내는 방식이다. 주낙이라면, 미리 준비한 낙지를 낚시 바늘에 꿰어 바다에 넣은 후, 다시 꺼내는 식이다. 이런 방식을 거치면, 실제로 잡은 낙지는 대여섯마리인데, 그림상으로는 수십마리가 잡힌 걸로 보인다. 이렇게 다양한 각도에서 촬영된 '연출 장면'은 방송에서 마치 '실제 상황' 인 것 처럼 방송된다. 원칙적으로는 자막에 '연출 장면'임을 알리는 자막을 넣어야 하나, 자막을 넣는 경우는 대단히 예외적인 경우다.

오래 전, 횃불 낙지로 유명한 어느 마을에서 촬영을 했을 때의 일이다. 예상과 달리, 낙지가 잘 잡히지 않자, 여기 저기 많은 방송에 출연한 경험이 있던 마을 이장이, 말릴 새도 없이 시장에서 사온 낙지 40여 마리를 갯벌에 뿌리는 게 아닌가. 도대체 왜 그러시냐고 물었더니, 돌아온 답이 가관이었다. 잘 안잡히면 다들 이렇게 하니, TV 촬영이 있을 때는 습관처럼 알아서 준비를 해둔단다. 힘들게 잡으러 다니는 것 보다 이게 더 편한 것 아니냐며 의아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턱없이 적은 제작비와 짧은 제작 기간을 강요하는 한국 방송계의 구조적 문제점과 방송인 및 출연자들의 허약한 윤리 의식이 만들어낸 괴이한 풍경이었다.

옛날에야 그랬다치고, 요즘은 어떻냐고?  연출자가 노련한 경우, 리포터가 있으면, 이런 상황을 코믹 코드로 사용한다. 죽도록 고생해서 잡으려 했으나 잘 안되는 상황으로 몰아가면, 꽤 재미있는 상황을 만들 수 있다. 실제로, 요즘에는 그와 같은 구성의 음식 프로그램이 심심치 않게 등장한다. 요즘 방송가의 대세인 '리얼 코드'를 활용하는 셈. 그러나, 제작진이 노련하지 않은 데다가 신분상의 핸디캡(외주 제작 또는 계약직)이 있는 경우, 쌍팔년도 스타일의 '인위적 연출'을 피하긴 힘들다. 제작진이 도덕군자가 아닌 다음에야 생계가 달린 상황에서 '연출'의 유혹을 이겨 내기가 쉽지 않다.

그런데, 공중파건 케이블이건 음식 프로그램은 거의 대다수가 외주 제작이다. 자체 제작이라고 해도, 짧은 경력으로도 쉽게 만들 수 있기 때문에, 소위 '짬밥'이 안되는 초보 제작진이 맡는다. 게다가, 방송가 불황의 여파로, 리포터를 대동하는 음식 프로그램을 찾기가 쉽지 않다. 대부분 VJ를 활용한 1인 제작 시스템이고, 임금은 거의 '착취' 수준이니, 윤리를 따지는 건 사치에 가깝다. 상황이 이럴지니, 쌍팔년도 방식의 '짜고 치는 고스톱'이 사라질 수 없다.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구조적 한계이며, 전체가 아니라 부분의 문제이니 누군가를 비난하기도 쉽지 않다. 게다가, 음식 프로그램은 다큐멘터리가 아닌 바, 엄격한 윤리적 잣대를 들이대는 것도 마뜩치 않다. 하지만, 그 '연출'로 인해, 누군가 피해를 보는 일이 발생한다면, 얘기는 달라진다. 아직도 TV를 보고 현장을 찾았다가, 기대와 전혀 다른 모습에 실망하는 관광객이 적지 않다는 말이 들리니 말이다.  

재료를 구했다면 다음은 요리와 시식이다. 이 과정에도 시청자가 상상 못할 요지경 세상이 숨겨져 있으니...

                                                                                                                         to be continued...    

posted by PD the ripp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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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6/11 00:20 2009/06/11 0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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