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공포영화 보다 뉴스가 더 무섭다.

방송 2009/04/03 13:58 Posted by 3M흥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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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필명인 'PD the ripper'로 짐작할 수 있듯, 나는 공포영화 마니아다. 조지 로메로 감독의 시체 3부작을 보며 메스꺼워하기는 커녕, 낄낄거리던 이상한 고등학생. 타르코프스키과 베르히만, 고다르와 트뤼포의 영화를 주워 섬기는 영화학도들 앞에서, 이상 야릇한 '닥터 기글'의 웃음소리를 최고로 꼽던, 취향 독특한 운동권. 토요일 밤마다 흐느적거리며 비디오가게로 들어가, 금방이라도 핏물이 뚝 뚝 떨어질 듯한 '시뻘건 라벨'이 붙은 공포영화 비디오를 한 아름 들고 나오던, '멘탈'이 의심스러운 107동 총각. 그게 바로 나였다.

공포영화 상영관에서 대부분의 관객들이 요동치는 심장을 부여잡고, 터져나오는 비명을 씹어 삼키며, 공포에 질려 몸서리칠 때, 나는 대체로 코웃음치다가 낄낄거리고, 어느 순간 박장대소를 터뜨리거나, 아주 가끔은 졸기도 한다. 남과 다른 나만의 감상법이 따로 있는 탓이다. 인간의 욕망을 극한까지 끌어 올리는 장르적 쾌감부터, '더미(dummy)'의 솜털에 고스란히 담긴 장인의 땀방울을 찾아내는 발견의 기쁨까지. 사실, 내가 공포영화를 좋아하는 이유는 단 몇 줄의 문장으로 풀어낼 수 없을 만큼 다양하다.

가끔, 나와 함께 공포영화를 본 지인들이 내게 묻는다. 어쩌면 그렇게 무섭고 잔인한 영화를 태연자약하게 (때로는 키득거리며) 볼 수 있는 지를. 그때마다 나는 그들에게 단 한 마디만 건네고 만다.

"영화잖아?"

그렇다. 공포영화를 재미있게 즐기는 나만의 비법은 너무나 당연하게도 공포영화의 비현실성을 끊임없이 환기하는 방법이다. '콩트는 콩트일 뿐, 오해하지 말자' 라며? 영화는 영화일 뿐이니, 하이~얀 타일 위로 뿌려진 핏물도, 댕강 잘려나간 '모가지'도, 심지어 아크로바틱한 체위로 마루바닥을 기어오는 사다코까지, 죄다 가짜다. 마음 속으로 공포영화에 등장하는 모든 것들을, 팀 버튼의 '화성침공'에 나오는 화성인들과 똑같다고 되뇌이면, 더이상 무서울 이유가 없다. 왜? 몽땅 황당무계한 가짜니까!
 
역설적으로, 강심장의 표본처럼 굴던 내가 무서워했던 게 있긴 했다. 한 때, 안방극장에 일대 센세이션을 불러 일으켰던 '다큐멘터리 이야기 속으로'. 제목에 '다큐멘터리'를 떡 하니 붙이고 등장한 이 프로그램은 나의 방어기재를 단숨에 무력화 시켰다. 다큐멘터리, 즉, '사실'이라는 전제를 깔고, 시청자들의 '경험담'이라는 구실을 방패막이로 삼아, 민간에 떠돌던 귀신이야기를 드라마적 구성으로 '리얼'하게 만들었으니, 애초에 나의 비법인 '비현실성의 끊임없는 환기' 따위는 먹혀들 틈이 없었다. 상상해보라. 숱한 슬래셔와 하드고어 무비에도 끄떡없던 '냉혈한'이, 3류 공포영화만도 못한 엉성한 스토리의 TV 프로그램을 보며 기겁하는 모습을... 솔직히 고백하자면, 가끔 이불도 뒤집어썼다.

나는 요즘도 매주 DVD를 살 때 마다, 새로 나온 공포영화를 반드시 끼워 넣는다. 최악의 실패작일 지라도, 무조건 사놓고 본다. 엉성하면 엉성한 대로, 영화보는 내내 감독이며 스텝들 놀려먹는 재미가 쏠쏠하니 말이다. 잘 만든 공포영화라고 해도, 나의 '비현실성의 끊임없는 환기'라는 방어기재가 여전히 잘 작동하는 터라, 별 걱정이 없다. '다큐멘터리 이야기 속으로' 역시, 진작에 전설이 됐으니, 더이상 이불 따위를 뒤집어 쓰는 추한 꼴을 연출할 필요도 없다.

그런데, 요즘 내게는 이상한 병이 생겨 버렸다. 다름 아닌 '뉴스를 무서워하는 병'이다. 굳이 이름을 붙이자면, '뉴스 공포증'이나 '뉴스 울렁증' 정도가 되겠다. 정치 뉴스를 보면, 나 어릴적 어른들을 공포스럽게 만들었던 군부 독재 시절로 돌아간 듯한 착각에 빠져 간담이 서늘해진다. 경제 뉴스를 볼라치면, 태풍이 몰아치는 태평양 한 가운데에서 우왕좌왕거리는 한국 경제가 너무나 위태로워 보여, 나도 모르게 두 손을 꽉 쥐게 된다. 사회 뉴스에 이르면, 영화 속이 아니라 현실에서 내가 아는 누군가가 '슬래셔의 피해자'가 될 지도 모른다는 공포감에 사로잡혀 오금을 저리고, 그나마 덜 '하드'할 거라 믿었던 교육 뉴스를 보노라면, 약육강식의 정글로 변해가는 학교의 흉측한 몰골이 비수가 되어, 나의 심장을 파고든다.

'비현실성의 환기' 따위는 말장난에 불과하다. 이건 뉴스다. 지금 이순간, 내 눈 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사실'이니, 어찌 공포스럽지 아니한가? 너무 많은 '하드고어'가 한국 사회 곳곳에서 동시에 펼쳐지니, 그저 나이가 들어 걱정이 많아졌다고 치부할 수도 없다. 나는 요즘, 뉴스가 너무 무섭다.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은 어떠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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