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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 알다시피 한국 오락 프로그램의 끝은 항상 뮤직비디오로 장식한다. 마치, 공식처럼 프로그램이 끝나면 다음회 예고가 나오고 스텝 명단으로 하단부를 장식하는 뮤직비디오가 등장한다. 최근에는 한 편이 아니라, 두 편이 연달아 나온다. 툭 끊긴 채 이어지는 두 편의 뮤직비디오는 의미도, 맥락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들 뮤직비디오를 틀어댄다. 도대체 왜?

프로그램 말미의 뮤직비디오는 엔딩 크레딧의 역할을 맡고 있다. 프로그램에 참여한 스텝들을 알리는 부분인데, 굳이 뮤직비디오를 쓰지 않고, MC의 클로징 멘트나, 다음회 예고가 나오는 장면에서 자막을 흘려 보내도 된다. 실제로, 90년대 중반까지는 그렇게 처리했다. 그런데, 90년대 중반 이후, TV의 자막이 급격히 증가한다. '쌀집 아저씨'라 불렸던 MBC 김영희PD가 '칭찬합시다'로 상징되는 '느낌표'와 '양심 냉장고'로 불렸던 '일요일 일요일 밤에'라는 프로그램에서, 보조 역할에 불과했던 자막을 또 다른 '메시지 전달의 도구'로 활용해 성공한 뒤 부터다.

자막이 중요해지다보니, 프로그램 말미, 크레딧 처리에 문제가 발생한다. 과거처럼, 클로징 멘트 부분이나 다음회 예고 부분에 스텝 명단을 흘려 보내면, 정작 중요한 본편의 자막을 쓸 수 없거나 너무 많은 자막으로 인해, 시청자들의 주목도을 떨어뜨리는 것. 이때부터, 각 프로그램간에는 보이지 않는 전쟁이 시작됐다. 별도의 크레딧 화면을 만들돼, 시청자들의 눈길을 사로잡을 수 있어야 했다. 이때 등장한 것이 바로 본편에서 미처 방송되지 못했던 편집된 장면이나, NG장면을 활용한 크레딧이다. 엔딩 크레딧을 담당했던 조연출들의 피나는 사투(?)가 벌어지던 시기였다. 기껏해야 1분 남짓한 크레딧 제작을 위해 밤을 세우는 일도 벌어졌다.

변화의 계기는 1998년 '조성모'였다. 드라마 형식의 뮤직 비디오 'To Heaven'의 기록적인 성공으로 인해, 영화 같은 뮤직 비디오들이 쏟아져 나왔고, 방송사들은 앞다퉈 이를 방송하기 시작한다. 그런데, 이때만 해도 뮤직 비디오는 크레딧이 아니라 본편의 주요 코너로 소개되던 시절이다. 프로그램 내에서 정식으로 주목도 높은 가수의 뮤직 비디오를 모두 다(잠깐이 아니라 처음부터 끝까지) 보여주고 이에 대한 토크가 펼쳐졌으니 말이다. 요즘 같으면 간접광고니, 기획사의 로비니 하는 뒷말과 비난이 쏟아졌을 만한 일이지만, 당시에는 시청자들의 관심이 뮤직 비디오에 쏠려 있던 터라, 방송관계자는 물론, 시청자들까지도 프로그램 내에서의 뮤직 비디오 소개를 당연하게 여기던 상황이었다.      

'조성모'의 성공 이후, 음반 기획사들의 뮤직 비디오 제작은 말그대로 홍수였다. 2000년대 초에는 공중파에 뮤직 비디오만을 전문으로 소개하는 프로그램이 있었을 정도. 따라서, 제작진은 밤을 세워 크레딧 화면을 만들 필요가 없어진다. 기획사가 제공한 주목도 높은 뮤직 비디오 하단에 자막만 흘려 보내면 간단하니 말이다. 기획사는 수억원을 들인 뮤직 비디오를 활용해 홍보 효과를 높이고, 방송사는 '남'이 만든 콘텐츠로 시청률을 높이는 '윈-윈 게임'. 본편에서도 보여주고, 엔딩 크레딧에서 또 보여줘도 이상할 게 없던 시절이다. 

하지만, 이같은 상황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2000년대 초를 정점으로, 시청자들이 더이상 뮤직 비디오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게 되면서, 뮤직 비디오의 효용 가치가 떨어진 것. 방송사는 간접광고라는 비난을 감수하면서까지 뮤직 비디오를 본편에 소개할 이유가 없어졌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기획사의 뮤직 비디오 홍보 시간은 오직 하나, 1분 남짓의 엔딩 크레딧 뿐이었다. 이즈음부터, 뮤직 비디오 노출이 절실한 기획사와 가수의 직접 출연이 필요한 방송사간에 '암묵적 거래'가 시작됐다. 

2000년대 중반, '거대 기획사'의 등장은 뮤직 비디오 노출의 쏠림 현상을 야기시켰다. 일부 거대 기획사가 섭외가 어려운 스타의 출연을 조건으로, 자사 소속 가수들의 뮤직 비디오 노출을 요구하면, 스타의 출연으로 시청률을 높여야 하는 방송사는 이를 거부하기가 쉽지 않았다. '거대 기획사'의 요구를 들어주자니, 형평성의 문제가 발생했고, 19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중반까지 몇차례 이어진 '기획사와 방송사 간부간의 로비 스캔들'로 인한 의혹의 눈길 역시 부담이었다. 결국, 방송사는 투명성 확보를 위해, 뮤직 비디오 노출에 대한 자체 '가이드 라인'을 만들게 된다.     

과거와 달리, 요즘 오락 프로그램의 말미에 노출되는 뮤직 비디오의 선정권은 담당 제작진이 갖고 있지 않다. 제작진이 임의로 선정하다보면, 쏠림 현상이 생길 수 있기 때문에, 전체 프로그램을 총괄하는 직급(보통 국장급)이 지정 또는 승인한다. 특정 뮤직 비디오의 과다 노출을 막고, 형평성을 유지하기 위한 고육지책인 셈. 아예 뮤직 비디오를 사용하지 않으면 되지 않느냐고? 기획사와 공생관계를 유지해야 하는 방송사로서는, 크레딧을 만들기 위해 별도의 시간과 노력를 투여하면서까지 기획사들의 뮤직 비디오 노출 기회를 차단할 이유가 없다. 그러니, 세간의 의혹을 해소하기 위해 어느 정도 형평성을 유지하면서, 뮤직 비디오를 활용하는 편이 훨씬 이익이다. 기획사의 이익이야 당연한 거고.

그런데, 뮤직 비디오 선정을 '시청률'이 아니라 '형평성'을 기준으로 하다보니, 최근 또 다른 문제가 발생했다. 신곡을 발표하는 가수들은 너나없이 뮤직 비디오를 만드는데, 정작 이를 노출하는 프로그램의 숫자가 많지 않다는 것. 아무리 적절히 배분해도 소수에게만 혜택이 돌아가니 난감할 수 밖에. 그렇다고 뜬금없이 교양 프로그램 말미를 뮤직 비디오로 장식할 수는 없지 않은가?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요즘 엔딩 크레딧에는 두 편의 뮤직 비디오가 나란히 등장한다. 프로그램의 수를 늘릴 수는 없으니, 프로그램 한 편당 두 편의 뮤직 비디오를 동시에 노출하기 시작한 것. 발라드가 나오다 갑자기 댄스곡으로, 댄서들의 현란한 춤사위 뒤로, 눈물을 뚝뚝 흘리는 비련의 주인공이 등장하는 기묘한(때로는 코미디에 가까운) 엔딩 크레딧은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만들어진 것이다.              

 posted by PD the ripp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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